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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W 증후군 (부전도로, 심계항진, 전극도자절제술)

by Agong 2026. 4. 21.

건강검진에서 심전도 결과지를 받아 들고 "WPW 패턴 의심"이라는 문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평소에 딱히 불편한 게 없었거든요. 그냥 심장이 가끔 두근거리는 정도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심장 안에 여분의 전기 통로가 있었던 겁니다. WPW 증후군은 이처럼 아무 증상이 없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방치했을 때 드물지 않게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부전도로가 만드는 문제, 심계항진이 신호다

정상적인 심장은 전기 신호가 동방결절에서 출발해 방실결절(AV Node)을 거쳐 심실로 전달됩니다. 여기서 방실결절이란 심방과 심실 사이에서 전기 신호의 속도를 조율하는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하는 조직입니다. 이 관문이 있어야 심방과 심실이 적절한 순서로 박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WPW 증후군 환자는 이 정상 경로 외에 켄트(Kent) 섬유라 불리는 부전도로(Accessory Pathway)가 선천적으로 존재합니다. 부전도로란 방실결절을 우회해 심방과 심실을 직접 연결하는 비정상적인 전기 통로로, 이 지름길을 통해 전기 신호가 심실에 먼저 도착하면서 심실이 정상보다 일찍 흥분하게 됩니다. 이를 조기 흥분(Pre-excitation)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직접 심전도 결과를 들고 순환기내과를 찾아갔을 때, 의사가 가장 먼저 설명해 준 게 바로 이 델타파(Delta wave)였습니다. 델타파란 심전도 파형에서 QRS파 앞에 나타나는 완만한 경사면으로, 심실이 부전도로를 통해 조기 흥분하고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PR 간격이 짧아지고 QRS파가 넓어지는 것도 같이 나타납니다. 제 결과지에도 그게 고스란히 찍혀 있었고, 그 순간 단순한 두근거림이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심계항진입니다. 여기서 심계항진이란 심장이 빠르거나 강하게 뛰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증상으로, WPW에서는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나는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PSVT)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싶어서 넘겼는데, 제 경험상 이건 일반적인 두근거림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맥박이 갑자기 분당 180회 가까이 치솟고, 10분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뚝 멈추는 패턴이었습니다.

WPW 증후군에서 특히 위험한 상황은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이 동반될 때입니다. 심방세동이란 심방이 규칙 없이 매우 빠르게 떨리는 상태인데, 여기에 부전도로가 더해지면 심실이 분당 200회 이상으로 과도하게 빠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가 심실세동으로 이어지면 돌연사 위험이 생기기 때문에, 단순히 두근거린다고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건강정보).

WPW 증후군에서 놓쳐선 안 되는 증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나는 두근거림
  • 두근거림과 함께 오는 어지러움, 흉통, 호흡곤란
  • 운동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 발생하는 실신
  • 건강검진 심전도에서 델타파, 짧은 PR 간격 지적

전극도자절제술, 완치에 가장 가까운 선택

WPW 증후군이 있어도 증상이 전혀 없다면 당장 치료를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심계항진이 반복되거나, 심방세동이 동반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경우 가장 확실한 해결책으로 꼽히는 것이 전극도자절제술(Catheter Ablation)입니다.

전극도자절제술이란 허벅지 쪽 대퇴정맥을 통해 전극이 달린 카테터를 심장 안으로 삽입한 뒤, 전기생리학적 검사(EPS)로 부전도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고주파 에너지나 액체 질소로 해당 부위를 비활성화하는 시술입니다. 여기서 전기생리학적 검사(EPS)란 심장 안에서 직접 전기 신호를 기록해 부정맥의 원인과 기전을 파악하는 정밀 검사로, 절제술 직전에 함께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심장에 관 넣는다"는 말 자체가 너무 무서웠는데, 제가 직접 시술 과정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 이게 개흉 수술이 아니라 혈관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이라 회복이 훨씬 빠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성공률이 높고, 재발률도 낮은 편이라 부전도로가 명확하게 확인된 경우에는 대부분 이 시술을 권유받게 됩니다.

시술이 어렵거나 환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항부정맥제를 통한 약물 치료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다만 약물은 발작을 예방하거나 조절하는 것이지 부전도로 자체를 없애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절제술이 더 권장되는 편입니다. 대한부정맥학회도 증상이 있거나 위험도가 높은 WPW 환자에게는 카테터 절제술을 우선 고려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부정맥학회).

가슴이 갑자기 빠르게 뛰고 어지럽고, 그 증상이 특별한 이유 없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스트레스나 카페인 탓으로만 돌리지 마시길 권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스스로 판단하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심전도 한 장이면 상당 부분을 확인할 수 있으니, 일단 순환기내과에서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맞습니다.

WPW 증후군은 무섭게 들릴 수 있지만, 정확히 진단받고 필요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심방세동 동반 여부나 증상의 빈도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스스로 위험도를 판단하기보다 부정맥 전문의가 있는 곳에서 전기생리학적 검사까지 포함해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2177
https://www.k-hr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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