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끝이 화끈거리고 저린 게 단순한 혈액순환 문제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양쪽이 똑같이, 그것도 몇 달째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다발성 신경병증은 말초신경 전체가 광범위하게 손상되는 질환으로, 방치하면 감각 저하를 넘어 근력까지 무너집니다. 저도 처음엔 '좀 쉬면 낫겠지' 싶었는데, 실제로 공부해 보니 접근 자체가 완전히 달라야 하는 질환이었습니다.
손이나 발이 아니라 '신경망' 자체가 망가지는 것
일반적으로 손발이 저리면 혈액 순환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단순히 넘겼습니다. 그런데 다발성 신경병증(Polyneuropathy)은 성격이 다릅니다. 혈관이 아니라 말초신경(peripheral nerve), 즉 뇌와 척수에서 손발 끝까지 뻗어 있는 신경 가지들이 동시에 손상되는 상태입니다. 쉽게 말해, 전선 한 가닥이 끊어진 게 아니라 여러 가닥이 한꺼번에 피복이 벗겨지는 상황입니다.
제가 이전에 살펴봤던 요추 추간판 탈출증이나 손목 터널 증후군은 특정 신경 하나가 눌려서 생기는 단일신경병증(mononeuropathy)입니다. 단일신경병증이란 국소적인 압박이나 손상으로 한 개의 신경만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다발성 신경병증은 전신적인 원인에 의해 광범위한 신경망이 함께 무너지는 것이라, 접근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증상이 손발 한쪽에서만, 혹은 비대칭적으로 나타난다면 단일신경병증을 의심해야 하고, 양쪽 발끝에서 동시에 시작해 위로 올라온다면 다발성 신경병증 쪽을 봐야 합니다.
감각신경, 운동신경, 자율신경 중 어디가 먼저 손상되느냐에 따라 증상 양상이 달라집니다. 감각신경이 먼저 침범되면 "양말을 신은 것 같다", "모래 위를 걷는 것 같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운동신경이 손상되면 단추를 채우기 어렵거나 발목이 자꾸 꺾이는 증상이 생깁니다. 자율신경(autonomic nerve)까지 영향을 받으면 일어설 때 갑자기 어지러운 기립성 저혈압, 소화 장애, 비정상적인 발한 등이 동반됩니다. 자율신경이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심장 박동, 혈압, 소화 등을 조절하는 신경계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아서, 단순한 저림 하나로 뭉뚱그려 넘기기엔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습니다.
원인이 너무 많아서, 찾는 것 자체가 치료의 절반
다발성 신경병증을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놀랐던 건 원인 목록이었습니다. 당뇨, 알코올, 비타민 결핍, 항암제, 농약 같은 독성 물질, 자가면역질환, 신부전, 갑상선 질환까지 한 질환에 이렇게 원인이 다양한 경우도 드뭅니다. 원인이 많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치료 자체가 표적을 잃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당뇨병성 신경병증(diabetic neuropathy)입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이란 고혈당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신경에 영양을 공급하는 미세혈관이 서서히 망가져 신경 손상으로 이어지는 합병증입니다. 당뇨 진단을 받고 수년이 지난 후에야 발끝 저림으로 처음 증상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혈당이 오르내리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뒤늦게 신경병증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전형적입니다.
알코올성 신경병증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성 음주 자체의 신경 독성과 함께, 알코올 의존 상태에서 비타민 B군 흡수가 떨어지는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비타민 B1(티아민), B6, B12 결핍은 그 자체로도 말초신경을 손상시킬 수 있는 독립적인 원인입니다. 또한 길랭-바레 증후군(Guillain-Barré syndrome)처럼 면역 체계가 자신의 신경을 공격하는 자가면역 반응이 원인인 경우도 있는데, 이쪽은 급격히 진행될 수 있어서 빠른 대응이 필요합니다. 농업이나 현장 업무에서 농약이나 유기용제에 반복 노출되는 분들도 주의가 필요한 그룹에 포함됩니다.
일반적으로 '저리면 일단 비타민 B를 먹으면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 접근이 조금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타민 결핍이 원인이라면 맞는 선택이지만, 당뇨나 자가면역이 원인이라면 보충제만으로는 진행을 막기 어렵습니다. 원인을 모르는 채 대증 처방만 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검사는 어떻게 하고, 결과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다발성 신경병증을 진단할 때 핵심이 되는 검사는 신경전도검사(NCS, Nerve Conduction Study)와 근전도검사(EMG, Electromyography)입니다. 신경전도검사란 피부 위에서 전기 자극을 줘 신경이 신호를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강하게 전달하는지 측정하는 검사입니다. 속도가 느려졌다면 신경을 감싸는 수초(myelin)가 손상된 것이고, 신호 자체가 약하다면 신경 섬유 자체가 줄어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패턴을 구별하면 어떤 종류의 신경병증인지 가닥이 잡힙니다.
근전도검사(EMG)는 근육에 얇은 바늘을 삽입해 전기 신호를 분석하는 검사입니다. 많은 분들이 바늘 삽입에 겁을 냅니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여러 번 들었습니다. 불편하긴 하지만 신경과 근육 연결 상태를 파악하는 데 이 검사만큼 정밀한 것이 없어서 진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합니다.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한 상급병원에서도 이 두 검사를 기본으로 진행합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건강정보).
혈액검사도 빠질 수 없습니다. 혈당 및 당화혈색소(HbA1c), 비타민 B12 농도, 갑상선 기능, 신장 및 간 기능, 자가면역 항체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해 원인 질환을 좁혀 나갑니다. 대한신경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원인 불명의 다발성 신경병증도 전체의 약 30%에 이를 만큼, 검사를 해도 명확한 원인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출처: 대한신경과학회). 그래서 증상이 새로 생겼거나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면, 기다리지 말고 신경과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발성 신경병증 진단을 위한 주요 검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경전도검사(NCS): 신경의 전기 신호 전달 속도와 강도를 측정해 손상 부위와 유형을 파악합니다.
- 근전도검사(EMG): 근육에 바늘을 삽입해 신경-근육 연결 상태를 확인합니다.
- 혈액검사: 혈당, 당화혈색소, 비타민 농도, 자가면역 항체, 신장·간 기능을 종합 점검합니다.
- 신경 조직검사: 위 검사로도 원인이 불명확한 경우 피부 신경 생검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치료는 '원인 제거'가 전부, 통증 조절은 그다음
손상된 말초신경은 완전히 재생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치료의 목표는 '원인을 없애 더 이상 손상이 진행되지 않도록 막는 것'입니다. 이 점이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당뇨가 원인이라면 혈당 관리가 치료 그 자체이고, 항암제가 원인이라면 담당 의사와 상의해 용량이나 약제를 조정하거나 예방약을 쓰는 것이 핵심입니다. 알코올이 원인이라면 금주 없이 다른 치료는 의미가 없습니다.
통증 조절을 위해서는 일반 진통제보다 신경병증성 통증(neuropathic pain) 전용 약물이 씁니다. 신경병증성 통증이란 신경 자체의 손상이나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통증으로, 타박이나 염증으로 인한 일반 통증과는 신호 경로가 다릅니다. 그래서 일반 소염진통제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항경련제(가바펜틴, 프레가발린 계열)나 삼환계 항우울제(tricyclic antidepressant) 같은 약물이 더 효과적입니다. 삼환계 항우울제란 원래 우울증 치료에 쓰이던 약물이지만, 신경병증성 통증에도 효과가 확인되어 현재는 통증 조절 목적으로도 널리 사용됩니다.
재활치료와 발 관리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감각이 무뎌지면 발바닥에 상처가 나도 모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당뇨 환자에게 내향성 발톱이나 작은 찰과상이 궤양으로 번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발을 눈으로 확인하고, 꽉 끼는 신발을 피하고,